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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New Normal)’에 맞서서 아티스트가 테러와 비극에 대체 미디어로 반응하는 법

Against the ‘New Normal’: How Artists Are Responding to Terror and Tragedy With Alternative Media

잔인한 이미지로 가득한 문화에서도, 시각 아티스트가 비집고 들어갈 포인트가 있을까?

Luke Willis Thompson, autoportrait (2017). Chisenhale Gallery 2017에서 전시. Chisenhale Gallery 주관, 아티스트 허락으로 Create 협찬. 사진: Andy Keate.

“사진은 무엇을 원할까?” 작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인 W.J.T. Mitchell은 12년 전에 같은 이름으로 “신선한 출간물”을 발표하며 세상에 물었다. Mitchell은 폭력적인 미디어 이미지가 뉴노멀(new normal)로 대표되고 있던 90년대 초반의 시각 문화가, 9/11 테러를 기점으로 근본적인 지각 변화를 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10년간 우리는 금융 위기, 국내와 해외를 포함한 테러의 발현, 인구 이동, 환경 파괴 등을 지켜봐 왔다. 또, 이러한 사건들의 시각적 증거들은 마치 아침 뉴스와 같이 우리의 페이스북 피드를 거의 무한정으로 채워왔다. 하지만 출판 형태의 뉴스와 지극히 개인적인 소셜미디어의 뉴스스탠드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정보를 채워나가는 동안, 예술계는 세계적인 이슈들을 표현할 의무가 전혀 없었다.

Luke Willis Thompson, autoportrait (2017). Chisenhale Gallery 2017에서 전시. Chisenhale Gallery 주관, 아티스트 허락으로 Create 협찬. 사진: Andy Keate.

“사진은 무엇을 원할까?” 작가이자 미디어 이론가인 W.J.T. Mitchell은 12년 전에 같은 이름으로 “신선한 출간물”을 발표하며 세상에 물었다. Mitchell은 폭력적인 미디어 이미지가 뉴노멀(new normal)로 대표되고 있던 90년대 초반의 시각 문화가, 9/11 테러를 기점으로 근본적인 지각 변화를 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10년간 우리는 금융 위기, 국내와 해외를 포함한 테러의 발현, 인구 이동, 환경 파괴 등을 지켜봐 왔다. 또, 이러한 사건들의 시각적 증거들은 마치 아침 뉴스와 같이 우리의 페이스북 피드를 거의 무한정으로 채워왔다. 하지만 출판 형태의 뉴스와 지극히 개인적인 소셜미디어의 뉴스스탠드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정보를 채워나가는 동안, 예술계는 세계적인 이슈들을 표현할 의무가 전혀 없었다.

이제 이러한 사실이 변하려 한다. 트럼프 당선을 시작으로, 서부의 “뉴라이트” 세력의 급격한 성장과 더불어, 정치적 혼란이 개발도상국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2차 대전과 산업혁명 이후로 인류는 이런 대규모 인구 이동을 겪어본 적이 없고, 이러한 변화는 어떤 의미에서 예술과 참사의 경계를 바꿔놓았다. 예를 들어 뉴욕의 9/11 박물관은 비극과 참사에 반응하는 첫번째 전시를 시도했다. 한편, 런던 남동부에 있는 Imperial War Museum은 영국 최초로 2001 테러에 반응하는 현대 미술전인 “Age of Terror: Art Since 9/11”을 개최했다. 이 전시는 Mona HatoumAi WeiweiGerhard Richter, and Jenny Holzer의 작품을 2017 가을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다.

참사와 테러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는 시도를 하는 작가들에게는, 이러한 윤리적, 미적 움직임이 그들이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 더 큰 조건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심하게 과장된 폭력과 트라우마의 이미지 문화 속에서, Mitchell이 지적하는 것처럼, 예술이 본래의 시각적 권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티스트들은 어떤 테크닉 혹은 미디어를 사용해 이런 사진들과 우리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우리가 이러한 트라우마, 비극, 참사, 테러를 마주하기 위해 가림막을 비로소 치웠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거기에는 어떠한 새로운 비판적 목소리가 생겨나게 될 것일까?

Richard Mosse가 Trevor Tweeton과 Ben Frost와 합작한 작품, Incoming. Barbican Centre, The Curve 전시. 사진: Tristan Fewings/Getty images

오늘날의 아티스트는 폭력적인 이미지들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작업해야 한다. 이에 반응하기 위해 많은 아티스트들이 비디오 설치 포맷을 고려한다.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으면서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게 가능해진다. 갤러리의 어두운 공간에서 우리는 감상자로서의 시각을 잃게 되고, 아티스트가 소개하는 세상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사실 2017년은 비디오 설치 미술이 각광받는 한 해였다. Richard Mosse의 London Barbican 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Incoming 전시와, 동런던의 Chisenhale 갤러리에서 열린 Diamond Reynold가 합작한 Luke Willis Thompson의 autoportrait 전시가 그 예시이다. 전통적이지 않은 양식으로 지금 시대의 재앙들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오늘날의 아티스트들은 재앙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대안 미디어를 또한 고려한다. 여기에는 금지되었거나 불법적인, 혹은 구하기 어려운 영화가 있는데, 예를 들어 톰슨의 신성시되는 Tri-X 흑인과 백인 필름에서의 고차원적인 예술세계(Warhol이 좋아한다), 혹은 Mosse의 열 감지 카메라 작업 등이 있다. Mosse의 카메라는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35km 밖의 신체를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비디오 관련 아트의 확산 이전에 아티스트들은 대안적인 형태의 예술을 통해 감상자들을 재앙의 세계로 시각적 안내를 해왔다. Adam Broomberg와 Oliver Chanarin의 The Day Nobody Died(2008)은 거대한 분량의 아날로그 사진이 가진 힘을 보여주며, 반사진적인(anti-photography) 저항의 측면도 보여준다.

Broomberg와 Chanarin, Mosse, Thompson의 이러한 최근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아티스트가 흔치 않은 미디어를 통해서 이미지를 재조명하고 재앙을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상상해 그려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시대를 프레이밍하는 입에 담기도 힘든 폭력과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새로운 목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지우고 감추려는 욕망을 가진 세력과의 깊은 갈등 또한 볼 수 있다.

Richard Mosse는 Trevor Tweeten, Ben Frost와 함께 Incoming을 작업했다. Barbican Centre의 The Curve. 사진: Tristan Fewings/Getty images

다양한 관점에서 Incoming과 The Day Nobody Died는 미적인 면과 의도적인 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Mosse는 52분짜리 비디오 작업에서 감상자의 눈앞에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거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힘을 발휘했다. Barbican의 굴곡진 벽을 따라 12피트 스크린 3개를 배치함에 따라, 이 불가사의한 작품은 한눈에 볼 수가 없는 구조이다. 열 감지 기술의 괴상한 미학은 충분히 기괴하다. 물리학의 모든 규칙에 반한다. 뜨거운 연기가 검은 용암처럼 앞쪽에서 올라오고, 피난민 아이들은 Tempelhof에서 Calais 캠프까지 수척한 좀비처럼 늘어져 있다. 그들이 작고 검은 눈과 텅 빈 입은 그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게 만든다.

Incoming의 가장 논란이 되는 장면 중 하나는 비극이 “실시간”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Mosse와 그의 크루는 그리스의 한 섬에 틀어박혀서 300명의 난민을 태운 배가 터키 연안으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면서 촬영한다. 그들은 열 감지 카메라를 비극적 장면에 들이댄다. 기괴한 단색 영상이 감상자의 온전한 조정, 인식, 비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Mosse가 일반적인 감상자들이 난민을 바라볼 때 “내 일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본다는 점을 꼬집어내는 동안, 이러한 방식은 자칫 우리를 이 장면을 현실로 인식하는 것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 Mosse의 작업은 이러한 재앙을 양산해내는 비인간적인 기술을 만들어낸 세계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특히나 미국군에 대한)이다. 감상자에게도 이러한 시각과 관점을 엿보게 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을 다시 채택하고 똑같이 사용함으로써, Incoming은 잔인한 군사적 시각을 확장해주었다는 비판 또한 받고 있다.

Broomberg & Chanarin, The Day Nobody Died(2008), 사진 : ©Broomberg & Chanarin, courtesy Lisson Gallery

Mosse의 작업이 뺨을 한 대 때리는 듯하다면, Broomberg와 Chanarin의 작업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키스 같다고 할 수 있다. Mosse가 짙은 묘사를 통해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었다면, Brooberg와 Chanarin은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기적을 회상하며 그려낸다. 이 두 작가는 2008년 전쟁이 무르익었을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다. 끝없는 죽음과 파괴에 대한 산 증인들이다. 하지만 5번째 날에는 누구도 죽지 않았다. 혼란 중의 심오한 휴식이었고, 작가들은 이를 태풍의 눈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 카타르시스와 같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조명해보기로 했고, 태양에 20초간 노출시킨 6미터 롤 분량의 필름을 제작했다. 이 필름은 한 개 부대에서 다른 부대로 헬리콥터, 지프, 탱크로 이동하며 행복한 아무 일 없음을 채워나갔다.

Broomberg와 Chanarin의 “컨텐츠의 해방”은 Mosse의 적나라한 묘사를 좌절시킨다. The Day Nobody Died는 전쟁이 선사하는 충격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감추고, 없는 순간의 숭고한 추상화를 그려낸다. 감상자는 전쟁에 대해 평할 기회를 잃고, 결과적으로 아티스트의 고통스러운 여행에 대해서는 잊게 된다. 대신에 그들은 고통의 부재에 매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매혹적인 필름의 희미한 유출은 비극적 상황을 기억하는 무덤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이러한 효과는 일반적인 무덤을 보여주는 이 작업의 다른 면에서도 드러난다.

Thompson의 작업 autoportraits는 비극적 장면을 묘사하거나 감추기보다 그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Diamond Reynolds의 파트너는 작년 여름에 미네소타의 한 신호등 앞에서 경찰에게 치명적인 총격을 당했는데, 이를 작업에서 Thompson과 함께 표현한 것이다. autoportraits는 성능이 뛰어난 35mm 흑백 필름을 사용해 미디어가 보여주는 핸드폰 등의 저화질 영상 및 사진의 흑인에 대한 아름다운 죽음 묘사에 반하는 예술을 시도했다. 이 작업은 비극적 사건의 진행 과정을 시간별로 정확하게 묘사하기도 했는데, Reynolds와 Thompson은 재판을 진행하는 수준으로 작업을 기록했고, 전시는 안타깝게도 가해자 경찰이 모든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일주일 뒤에 개최되었다.

Luke Willis Thompson, autoportrait(2017). 설치 시점, Chisenhale Gallery 2017. Chisenhale Gallery 협찬 및 Create와 파트너십으로 제공. 아티스트에게 감사. 사진 : Andy Keate.

작품은 원래의 이미지가 가진 모든 속성에 반하고 있다. 느리고, 조용하고, 갈등이 있어 보이지 않고, 숭고한 이미지이다. Chiesenhale의 작은 구멍에 배치된 시끄러운 필름 프로젝터의 덜컹거리는 소음은 예술 역사의 전통이 일상 속의 흑인들의 죽음으로 인해 흔들린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autoportrait는 비어있는 홀 공간으로도 뻗어 나가는데, 이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전개와 반응을 의미한다.

재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큰 공통점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 세계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면서, 비극적인 사건들과 상황에 대해 먼저 질문한다. Mosse와 Broomberg & Chanarin은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Thompson과 Reynolds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는 아마 관점의 다양성이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재조명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아마 Mitchell의 사진과 질문이 우리에게 이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상적이고 현실에 깊은 뿌리를 두고, 대안적인 미래를 함께 상상하게 하는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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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원작자 ㅡ Alice Bucknell | 튜토리얼 ㅡ https://news.artnet.com/opinion/artists-respond-to-tragedy-with-alternative-media-1061957